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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해준그래]약육강식의 법칙 (W.무화)

 

 

 

 


bgm. Darkly - Touch




 

 



 

 

 

 

 

 

 

 

 

 약육강식의 법칙

 

 

* 미생 강해준 x 장그래

* 궁합도 안 보는 나이, 네 살 차이 (@1983x1987)

합작 : 6제. 엘리베이터



 

 


약육강식 이란 게 있어요 장그래씨. 약한 자는 강한 자에게 먹히고 살아남은 강한 자는 먹히지 않기 위한 생존 경쟁을 하는 거. 그런 걸 약육강식이라 해요.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목덜미를 타고 등허리를 따라 셔츠를 흠뻑 적셨다. 기다란 손가락으로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방울을 훔쳐내는 행위가 일련의 준비된 과정처럼 느껴질 만큼 강해준의 행동 하나하나는 우아하고 고귀했다. 알파의 힘. 뼛속부터 다르다는 것은 이런 것을 뜻하는 건가. 장그래는 생각했다. 알파가 곁을 스치기만 해도 벌벌 떨리는 사지를 비틀고 양 다리를 벌리고만 싶은 오메가인 자신의 더럽고 추잡한 처지에 비하여 알파인 강해준이 가지고 태어난 것들이, 말하는 것들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최상층에 올라가 본 적 있습니까?”

“없,습니다.”


뜸을 들이며 버겁게 숨과 말을 동시에 뱉는 장그래를 보며 강해준은 진심으로 궁금한 듯 고개를 비틀었다. 그렇게 숨쉬기가 힘든가…. 강해준은 조절을 한다. 뼛 마디 사이사이를 파고들던 채취를 미약하게 줄인다. 그와 동시에 탁, 하고 숨통이 트이자 장그래는 격하게 기침을 뱉었다. 속에서 독처럼 쌓인 것들과 함께. 조절한다고 한 건데, 심했나 봅니다. 욕을 해야 하나, 아니면 왜 그랬냐 추궁해야 하나. 이 두 가지의 선택지는 옳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대신 사과를 한다. 제가, 예민했나 봅니다. 죄송합니다 강전무님. 가장 올바른 선택지. 띵, 하는 소리와 동시에 15층 앞에 문이 열렸다. 1층 로비에서부터 초를 세기에 바빴던 억겁의 시간을 더듬으며 장그래는 장님처럼 고개를 숙이고 잘 깔려있는 카펫 위로 발을 내디뎠다.


“장대리.”

“예, 강전무님.”

“언제 술 한잔합시다.”


장대리가 삼 팀을 위해 세운 공적은 익히 들어 알고 있습니다. 조만간 부를 테니 올라와요. 장그래는 한참을 고개를 숙이며 시야의 사이로 문이 닫히는 것을 보고도 고개를 들어 올리지 못 했다. 한참 뒤 지나치는 누군가가 어깨를 두드리고 나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자리로 향했을 뿐이었다. 느릿한 걸음으로 자리로 향하며 장그래는 끝이 벌게진 손톱을 깨물고 생각에 잠겼다. 강해준에게 쉽게 잡아먹히지는 않을 것이다. 이것은 마지막으로 남은 자존심이었다. 알파의 눈에서 보자면 하찮고 우스워도 이것은 오메가가 마지막으로 스스로를 붙잡는 알량한 자존심의 문제였다.





강해준은 동그란 뒤통수가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고 시야에서 사라지자마자 낮게 웃음을 흘렸다. 이제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나른한 표정으로 투명창 너머의 바닥을 거만히 내려다보던 강해준은 고개를 젖혔다. 최상층에 오르기까지 무수한 시간을 참고 인내했다. 퍼석하게 마른 손바닥을 문지르며 버석거리는 무언가를 쥐었다 펼쳤다. 장그래, 영업 삼 팀. 구겨진 종이 자락이 다시금 강해준의 주머니 속으로 구겨졌다.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장그래씨.”


남아있던 장그래의 잔향을 집어삼킬 듯 강해준의 독한 향이 엘리베이터 안에 넘실거렸다. 손끝으로 닿는 종잇 자락에 새겨진 이름 세 글자를 앞이 보이지 않는 장님처럼 더듬어 만지던 강해준이 웃음을 토했다. 공공연하게 떠돌던 소문들이 있다. 젊은 나이에 최상층의 자리를 독차지한 알파 강해준과 구석자리하고도 화장실 맞은편의 자리를 머무는 오메가 장그래에 대하여. 원인터 회사 내로 떠도는 공공연한 소문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독처럼 쌓여만 갔다. 그것을 강해준은 탄식하며 기뻐했다. 원하던 바였으므로.


“얼마 남지 않았어…….”


손이 닿는 곳마다 붉게 달아오르던 살결을 기억한다. 앓는 소리 속에서도 예쁘게 구겨지던 얼굴을 기억한다. 땀에 흠뻑 젖은 등허리를 붙잡고도 쉽게 무너지지 않던 손을 기억하고 입술 안에 익숙하게 맴돌던 그 이름 세 글자를 기억한다. 그 모든 것을 기억한다. 기억하고 있었다. 영업 삼 팀으로 향하던 발자취를, 엘리베이터 속에 남은 잔향을, 잇새 사이로 부서지던 목소리를.


‘강, 대리님….’


비좁게 열린 엘리베이터 문 사이로 발을 내딛는다. 창 너머 구름이 지나다니는 듯한 아찔한 높이에 넘어지기를 몇 번 이었던가. 그때마다 종잇 자락에 새겨진 이름 세 글자를 찢어질 듯 쥐었던 때는 또 몇 번이었던가. 쉴 새 없이 평온함의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주마등에 강해준은 마른 기침을 토했다. 아주 오래였다. 단지, 장그래와 함께 하기 위해 허비한 시간들은. 완벽한 약육강식의 시스템 속에서 살아남아야 비로소 그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그리하여 마침내, 사랑이 막을 내리고 엘리베이터 속에 독한 잔해의 그림자가 머문다. 우리는 쥐가 들끓는 시궁창 속에 발을 내딛는다. 그곳이 일층으로 향하는 먹이사슬의 최하위인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