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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해준그래] 꿀Night (W.빙다리 핫바지)






Night


강해준 X 장그래

 


w. 빙다리 핫바지

 

 

 

 

 

[이제 내려와요]

 

 

 

지잉. 그래는 손에 꾹 붙잡고 있던 제 휴대폰에 도착한 문자를 보고나서야 이미 몇 분 전에 정리를 마쳐놓았던 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별로 무겁지 않은 가방을 어깨에 걸치면서 영업 3팀을 내려가는 그런 그래의 발걸음에 야근을 하려 남은 사람들이 손을 들어 인사를 건네 왔다. 꾸벅 맞인사를 하는 그래의 얼굴에는 오동통한 눈송이마냥 함박웃음이 피어있었다. 자동문을 빠져나가는 그래의 뒷모습을 보며 눈치 없는 남사원은 참 일 좋아하는 사원일세 하며 고개를 저었고, 눈빛이 날카로운 여사원은 장그래씨 연애하는 거 아냐 하며 새초롬한 눈을 해보였다. 그것과는 별개로 엘리베이터로 건물을 내려가는 그래의 입꼬리에는 한 층씩 깎이는 숫자를 볼 때마다 미소가 짙어졌다.

 

 

그래가 매일 출퇴근을 하던 1층 로비는 이제 퇴근시간만큼은 찬밥신세였다. 내려야할 1층을 지나 한 층 더 숫자가 깎이고 문이 열려 그래가 발을 내민 곳은 차가 세워진 지하주차장이었다. 퇴근시간이 지나 조금은 훵한 주차장의 구석진 곳만 찾아 그래의 고개가 살랑살랑 돌아가다 익숙한 차를 보고는 얼굴에 잔뜩 걸린 미소를 숨기려 오동통한 입술을 꾹 깨물고 뚜벅뚜벅 발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발을 옮길수록 텐이 잘 되어있는 차의 앞 유리로 희미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오자 참으려 했던 미소는 감춰지지 못하고 배시시 새어나왔다. 그리곤 차에 올라타자마자 제 얼굴에 쏟아지는 입맞춤의 세례에 결국 참지 못한 웃음소리가 입술 밖으로 흘러나왔다.

 

 

 

, 기다리게 해서 미안합니다.”

…아…, 대리님….”

 

, 많이 기다렸습니까?”

아니, 아니요…, 별로 기다리지도… 않았는데….”

 

, 내가 더, , 일찍 불렀어야 했는데.”

,지러워요…, 대리님….”

 

쪽… 해준씨라고 불러줘요.”

…해준씨….”

 

 

 

웃음기를 머금은 그래의 말에 해준은 운전석에서 조수석 쪽으로 거진 몸의 반을 넘기며 그래의 뺨을 두 손 가득 붙잡고 보송한 그래의 얼굴에 다시 연달아 입을 맞추었다. 제 뺨을 삼키듯 잡은 다정하고 커다란 해준의 손등 위로 제 손을 겹쳐 잡으며 그래가 말간 눈을 해준에게 향하자 그보다 더욱 다정한 해준의 눈길이 그래에게 쏟아져 내렸다. 해준의 손등에 도톰하게 올라온 핏줄을 손끝으로 살살 쓰다듬는 그래의 동그란 손끝에 해준은 고개를 내려 그래의 입술에 깊게 제 입술을 맞대었다. 도톰하고 따뜻한 입술이 맞비벼지고 그 사이로 더욱 뜨거운 혀가 엉켜 들어갔다.

 

 

 

 


해준은 꽤 로맨티스트였다. 정작 본인은 모르는 모양이었지만. 그도 그럴게 해준 자신도 딱딱하고 사무적인 제가 그래 앞에서만 주체하지 못하는 마음과 말들을 쏟아내는 것이 가끔 두려울 때가 있었다. 점점 변해가는 자신이 어색해 머리를 긁적일 때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자신이 그래에게 무의식중에 쏟아내는 애정을 막을 길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물론 막고 싶은 마음도 없었지만. 신중함과 진중함이 무기였던 해준은 이미 브레이크 없는 8톤 트럭처럼 연하의 연인에게 돌진 중이었다.

 

해준은 그래에게 자상했다. , 정정한다. 해준은 그래에게자상했다. 제 동기들이 혹여나 본다면 놀라 자지러질 정도로 자상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래는 그런 해준의 앞에 서면 제 머릿속이 새하얗게 변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 여기는 중이었다. 해준 또한 자신의 얼굴만 마주하면 정작 무슨 말을 뱉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새하얀 머릿속을 가진 줄은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

 

해준과 그래가 비밀 교제를 시작한 건 아주 단순한 우연에서부터였다. 우연찮게 원인터 신입 4인방과 술집에서 마주한 대리들이 함께 회식을 시작했고, 취기로 얼얼한 가운데 또다시 우연찮게 술기운을 식히기 위해 좁고 으슥한 골목에서 어색하게 마주한 건 두 사람 모두 예상치 못한 상황이었다. 시원한 밤바람이 솔솔 골목 안을 스쳐지나가고 그 속에서 몽글몽글 술 냄새를 풍겨대며, 교집합이라는 것이 거의 없는 사람끼리 띄엄띄엄 대화를 이어가고 있다는 사실이 두 사람은 우스울 수밖에 없었다. 결국 의미 없는 대화 끝에 작게 어깨를 흔들며 서로 소리 내어 웃음을 흘리다 얼굴을 마주했다. 이 또한 우연이었다. 생각보다 가까워진 거리도 우연이었고 눈을 마주하자 웃음기가 점점 사라진 것도 우연이었다. 그렇게 잔이 콸콸 넘치도록 연거푸 술을 마셔 정신없을 빨간 얼굴의 그래에게 무작정 입을 맞춘 건 그저 살짝 술에 몽롱할 뿐인 해준이었다. 입을 맞춘 이유는 중요하지 않다는 듯 서로 자연스럽게 눈을 감고 술과 밤에 젖어 촉촉한 입술을 맞대었다. 그렇게 아주 좁은 골목에서 다 큰 남자 둘이서 아이처럼 쭈그려 앉아 부드럽게 맞대었던 입술을 떼고는 한참을 서로 멍한 눈을 깜빡였고, 이에 또다시 서로 이마를 맞댄 채 아이처럼 배시시 웃어왔다. 이렇게 시작은 아주 우연이었지만 당연한 듯 관계를 달리했다.

 

 


 

저… 대리님.’

단 둘이 있을 때는 해준씨라고 불러주면 안 됩니까?’

 

…네…?’

해준씨라고 해봐요.’

 

 

 


해준은 그래의 앞에서 필터링을 잃은 사람처럼 굴었다. 매우 솔직했다는 말이었다. 그래에게 조를 줄도 알았다. 처음은 당연한 비밀 연애였지만 날이 지날수록 자신의 연인을 자랑할 수 없어 애먹는 마음으로 그래를 졸라왔다. 해준씨라고 불러봐요. 그래는 그런 해준의 앞에서만큼은 방어기제 없이 속수무책으로 풀어질 수밖에 없었다. 마치 갓 말을 배운 보드라운 아이처럼 뺨을 붉히며 처음으로 해준씨…? 하고 속삭이는 그래의 말에 널널한 그래의 조수석은 겹쳐진 두 사람의 몸으로 잔뜩 비좁아졌다. 입술이 비벼지고 혀가 엉켜 침으로 번들거리는 입술을 한 채 서로 마주보며 뜨거운 숨을 고르는 두 사람의 사이에서 해준은 남들 앞에서 잘 지어주지 않는 미소를 보여주며 그래에게 속삭였다.

 

 

 

…장그래.’

………

 

…그래야.’

 

 

 

정신이 빠진 것처럼 두 사람의 입술이 다시 맞대어진 건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이렇게 애정이 깊은 사이를 감추는 건 그렇기 때문에 두 사람에게 꽤 어려운 일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래보다 먼저 15층에서 빠져나와 익숙한 지하주차장으로 내려와서 퇴근을 하는 사람들과 마주할 일이 없도록 가만히 차 안에 홀로 앉아 시간을 재는 건 해준을 매우 지루하고 불편하게 했다. 가장 마음을 아프게 하는 건 이런 저를 위해 15층에 앉아 내려오라는 제 문자를 마냥 기다리고 있을 그래를 생각하는 일이었다. 초조하게 핸들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조금은 휑해진 주차장을 바라보다 급하게 손가락을 놀려 그래에게로 보내는 문자에서는 자주 오타가 만들어졌다. 짧은 문자 하나를 보내는 데에도 그 시간을 기다리기 힘들어 해준은 가만히 핸들 위에 제 이마를 내렸다. 마냥 흘러가는 시간들이 아까웠다. 그 시간들을 차곡차곡 모아두었다 제 연인과 보낼 수 있다면 좋았을 텐데. 답지 않은 제 생각에 헛웃음이 푹 튀어나왔지만 이내 고개를 들자 보이는 동그랗고 자그마한 체구에 해준의 머릿속이 다시 새하얗게 달아올랐다. 차에 오른 몸을 붙잡고 마냥 입을 맞춘 건 아마 그 때문이었을 거라 생각했다.

 

 

 

저녁 먹고 싶은 거 있어요?”

음…, 저는 뭐든 괜찮습니다. 대리ㄴ…, 해준씨는요…?”

 

나는 그래씨가 먹고 싶은 게 먹고 싶습니다.”

아…, 음….”

 

…생각나는 게 없습니까?”

…그… 혹시…

 

.”

…집에서 먹어도 되나요…?”

 

 

마침 빨간 불로 바뀐 신호에 해준의 차가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으며 덜컹 멈추었다. 앞으로 쏠렸다 다시 돌아오는 몸과 함께 해준은 더러 심장도 덜컹 멈추는 것 같았다. 무의식중에 그래의 앞으로 쏠리는 상체를 막아선 제 팔을 보다 고개를 올리자 아직은 의식하지 않으면 제 이름이 나오지 않는지 대리님, 괜찮으세요?! 하고 놀란 토끼눈을 한 그래의 얼굴에 해준이 멍한 얼굴을 해보였다. 자신의 집으로 온다는 것일까, 아니면 본인의 집에서 따로 먹겠다는 말일까. 해준은 멍해지는 자신의 머릿속을 정리하려 했지만 역시 제 앞의 4살 연하 연인 앞에서만큼은 이 세상 제일가는 바보였다.

 

 

 

…그 말은…

?”

 

그래씨네 집에서 따로 먹겠다는 말입니까, 아니면…

………

 

내 집에… 오고 싶다는 말입니까?”

………

 

 

해준의 얼빠진 얼굴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해보이던 그래의 귀가 점점 빨갛게 달아올랐다. 해준은 그 색만 봐도 가슴이 쿵쾅쿵쾅 뜀박질하는 것마냥 구는 자신이 참으로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새 그래의 입에서 나올 대답을 간절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의 까만 눈동자가 데구르르 한 바퀴 구르더니 다시 눈을 마주해왔다. …해준씨 집이라는, 말이었어요…. 그래의 대답과 함께 켜진 파란 불에 해준의 차가 난폭하게 자리에서 출발했다. 사랑을 하면 바보가 된다던 말을 흘려 들었던 과거의 자신을 조소하며 해준은 기어 대신 그래의 손을 꽈악 잡고 제 집으로 급하게 차를 몰았다.

 

 

급하게 달려간 것 치고는 두 사람의 시간은 소소했다. 사람이 다니지 않는 골목에선 손을 잡고, 큰길에서는 아쉽지만 손을 떨어뜨리고. 가던 길에 마트에 들려 간단하게 재료를 사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라 도착한 해준의 집 앞에서 눈이 마주치자 가볍게 입을 맞추고. 도란도란 갓 결혼한 신혼처럼 나란히 주방에 서서 서투르지만 요리를 만들고, 만들다 가끔 눈이 마주치면 다시 입을 맞추고, 나름 아기자기 식탁을 꾸미고. 사랑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꽤 맛있었던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함께 앉아 잔잔한 영화를 한 편 보고. 그러다 눈이 마주치면 다시 입을 맞추고. 늦어진 시간에 그래의 재킷을 챙기며 다시 그래를 데려다 주기 위해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에 어둠을 틈타 다시 입을 맞추고. 가만히 뼈대가 굵은 두 손을 겹쳐 잡은 채 소소한 이야기를 나누다 도착한 그래의 집 앞 골목에서 두 사람은 잠시 뜸을 들였다.

 

 

 

…벌써 다 왔네.”

…오늘 제가 괜히 피곤하게 한 것 같아서….”

 

아니. 오늘이 가장 즐거웠어요.”

저도… 그래요. …그런데 돌아가실 때 피곤하시지 않겠습니까…?”

 

…그럼 전화해줄래요?”

…그럴게요.”

 

…내리기 전에 잊은 것 없습니까?”

…아…

 

 

 

빤히 바라보는 해준의 눈동자에 그래가 버릇처럼 귀를 붉혔다. 그 모습을 보곤 해준은 손을 들어 그래의 귀불을 부드럽게 만지작거리며 그래의 얼굴을 바라봤다.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애정이 뚝뚝 떨어지는 눈동자에 그래는 잠깐 머뭇거리다 언제나의 밤처럼 손을 들어 해준의 뺨을 감싸 쥐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 그리고 쪽, 하고 닿는 입맞춤과 함께 코끝을 맞대며 후우 하는 떨림이 가득한 숨을 내쉬었다. 입술이 붙었다 떨어지는 간지러운 감촉과 코끝이 비벼지는 느낌에 두 사람의 입술엔 그림처럼 빙그레 웃음이 걸렸다. 입맞춤이 아쉬워 다시 다가와 쪽쪽 그래의 입가에 닿는 해준의 입술을 끝으로 두 사람의 몸은 떨어질 수 있었다.

 

 

 

들어가요.”

해준씨도… 조심히 들어가요.”

 

 

뱉어지는 제 이름에 벨트를 풀고 조수석 문을 여는 그래의 팔을 붙잡고 해준이 상체를 빼 다시 깊게 입술을 맞대었다. 내일 봐요. 나지막한 해준의 속삭임을 뒤로하고 뺨까지 홍당무처럼 익은 그래가 문을 닫고는 멀어지는 차를 바라보다 제 휴대폰을 꺼내 가장 위에 있는 번호를 꾹 눌렀다. 강 대리님. 하고 무미건조하게 걸린 텍스트에는 왠지 모르게 보이지 않는 하트장식이 뿅뿅 달린 듯한 낯간지러운 느낌이 들었다. 뚜르르 몇 번의 신호음이 가기도 전에 달칵하고 받아오는 목소리는 방금 전에 들었던 목소리였음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그리운 느낌이었다. 느리게 골목의 오르막길을 오르는 그래의 입꼬리에는 다시 잔잔한 웃음이 걸린 채였다.

 

 

 

[그래씨.]

…운전 조심해서 해요. 아까처럼 급하게 멈추거나… 급하게 출발하는 건…

 

[아…, 그건 어쩌다보니까…. 알겠습니다, 조심해서 할게요.]

…오늘은 정말… 음, 그러니까….”

 

[…올해 들어 가장 좋았습니다.]

…네….”

 

[제일 행복했어.]

………

 

[그런데 왜인지 모르게… 자꾸…]

…네?”

 

 

 

아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마침 딱 대문에 도착한 그래의 발걸음이 해준의 말에 우뚝 멈추었다. 자신도 느낀 그 감정, 아쉬움이라는 말을 해준에 입에서 듣는 순간 가슴이 벅차오르기 시작했다. 오늘 하루가 과할 정도로 아늑했고 행복했으면서도 막상 집으로 향하는 길이 너무나 아쉬워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던 이유가 무언지 몰랐다. 해준의 목소리를 들으니 가슴이 먹먹해져 그래는 입을 벌리기 어려웠다. 전화기 너머로 차문이 닫히는 소리와 주차장을 울리는 뚜벅뚜벅 구두소리를 들으며 그래는 그제야 느리게 입을 열었다.

 

 

 

도착했습니까…?”

[, 통화하니까 금방이네.]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

[…그래씨도.]

 

…조심히 들어가세요.”

[그래씨.]

 

…네.”

[…장그래.]

 

…네, 해준씨….”

[…잘 자요.]

 

 

 

달콤한 해준의 밤 인사를 끝으로 끊긴 전화는 뜨겁게 달아올라있었다. 마치 서늘한 날씨에 대문 앞에서 바보처럼 서있으면서도 100미터 달리기를 한 듯 뜨겁게 뛰어오르는 제 심장처럼 그렇게. 휴대폰에 닿았던 귀 또한 체온보다 살짝 높은 온도로 달아올라 있었지만 그게 오랜 통화 때문인지 아니면 달달한 목소리 때문이었는지는 잔뜩 붉어진 귀만이 알고 있었다.

 

 

 

 

 

*     *     *

 

 

 

 

 


 

오늘은 해준이 긴 출장을 끝내고 돌아오는 시간이었다. 그렇게 아쉬운 전화를 끝으로 해준은 급하게 출근길에서부터 그래에게 인사를 나눌 시간도 없이 예정에도 없던 출장을 떠나게 되었다. 일주일은 길면서도 생각보다 짧은 시간이라는 걸 아는 그래는 버틸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무엇을? 그리움을. 하지만 그 자신감은 단 하루 만에 와장창 무너져 자꾸만 답지 않게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게 했다. 드문드문 오는 문자들에 그리움은 그렇게 하루하루 불어나 일주일 만에 빵빵하게 그래의 안을 채워왔다. 금요일의 저녁, 6시를 살짝 넘은 시각에 그래는 영업 3팀 안 파티션 제 자리에 앉아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그리고 사람이 어느 정도 빠져나가자 마법처럼 그래의 손에 들린 휴대폰이 징징 울렸다.

 

 

 

[내려와요]

 

 

 

그 문자에 용수철처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그래는 야근을 위해 남은 사람들에게 발걸음을 빨리하는 와중에도 허겁지겁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총알처럼 자동문을 빠져나가는 그래의 뒷모습을 보던 남사원은 이제야 퇴근의 맛을 알았다며 짓궂은 웃음을 지어보였고 여사원은 예전과 같은 새초롬한 눈빛으로 분명히 연애하는 거야, 저건 하며 그래가 나간 문을 빤히 보다 다시 멈춘 손을 움직였다.

 

엘리베이터의 속도는 오늘따라 너무 느린 것만 같았다. 괜히 발끝을 조금씩 굴리며 목이 뻐근할 정도로 올라가는 숫자를 빤히 올려다보는 그래의 눈동자가 분주했다. 또한 밀려오는 갑갑함에 넥타이를 살짝 끌어내리며 어깨에 걸쳐진 끈을 손으로 질끈 잡았다 풀었다를 반복했다. 일주일동안 어색하게 홀로 출퇴근하던 1층 로비를 지나 멈춘 엘리베이터는 오랜만에 지하주차장에서 활짝 문을 열어왔다. 서두른 발걸음을 하다 이곳저곳 구석을 살피던 그래는 멀리서도 보이는 익숙한 차에 침을 꿀꺽 목 안으로 넘기고 차분한 척 발을 느리게 옮겼다. 차에 가까워질수록 심장이 쿵쿵거렸다. 어둡게 가려진 탠 사이로 자신이 좋아하는 해준의 곧은 목과 정갈한 와이셔츠가 들어오자 몸이 울릴 만큼 가슴이 뛰었다. 그래는 긴장에 젖어 후욱 한숨을 작게 쉬고는 떨리는 마음을 감추고 조수석의 문을 열어 제 몸을 밀어 넣었다.

 

 


 

…대리님, 잘 다녀오…

내 집으로 가요, 오늘.”

 

……네…?”

자고 가.”

 

 


 

언제나처럼 그래의 얼굴에 쏟아지던 입맞춤은 없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욱 뜨거운 해준의 손이 그래의 손에 꽈악 깍지를 잡아왔다. 얼굴을 마주한 채 화악 붉어지는 그래의 얼굴을 보던 해준은 가만히 상체를 기울여 그래의 몸과 가까이 했다. 훅 끼쳐오는 희미한 해준의 향수 냄새에 그래가 움찔 어깨를 움츠렸다. 잡아먹을 듯 가까이 스치는 체온과 함께 그래의 코끝에 해준의 코끝이 스쳐왔다. 입을 맞출 듯 그래의 입가에 타는 듯한 숨을 뱉던 해준은 입맞춤 대신 일주일 전과 같이 보송한 그래의 뺨에 깊게 입을 맞추고는 잔뜩 긴장한 그래의 손 더욱 힘줘 잡은 채 그 때와 같이 급하게 차를 몰았다. 해준의 입술이 닿은 그래의 뺨이 얼얼할 정도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지금껏 받았던 어떤 키스보다 야한 입맞춤이라 그래는 제 무릎에 올린 가방 위로 손을 올리고 주먹을 쥐었다펴는 것을 반복했고 지하주차장을 빠져나가는 해준의 차가 요란한 바퀴소리를 내며 미끄러져 움직였다. 엄마, 나 오늘 야근이에요. 라고 몰래 문자를 보내는 그래의 손도 휴대폰 위에서 자꾸만 미끄러져갔다.

 

 


해준의 집 문이 열리자마자 거칠게 쏟아지는 입맞춤에 그래는 매달릴 곳이 없어 벽에 등이 대어진 채로 해준의 어깨를 잡았다. 그 팔을 부드럽게 끌어 제 목에 감아주며 해준은 그래의 셔츠 안으로 손을 밀어 넣고 손바닥 가득 그래의 맨등을 쓸었다. 날씨에 서늘해진 해준의 손에 부르르 떠는 그래의 몸을 천천히 이끌고 와이셔츠의 칼라 안으로 고개를 박은 해준은 꽁꽁 셔츠 안에 감싸져있던 그래의 말랑한 살을 깨물었다. 부드럽고 조심스러운 손길에도 잘게 떠는 그래가 못내 사랑스러워 해준은 아랫도리가 저릿하게 달아올랐다. 탄식처럼 쏟아져 나오는 그래의 숨소리를 들으며 제 재킷을 허물처럼 바닥으로 쏟아내고는 그래의 몸을 천천히 침대 쪽으로 당겼다. 털썩, 침대 위로 주저앉은 해준이 그래의 허리를 끌어안고 제 다리 사이로 이끌었다. 허리부터 아직 벗겨내지 않은 바지에도 봉긋함이 느껴지는 그래의 둔덕을 쓸며 제가 들어갈 사이로 손끝을 문지르자 제 어깨에 올린 그래의 손에 잔뜩 힘이 들어가는 것이 느껴졌다. 물기에 젖어 떨리는 눈으로 저를 내려다보는 그래의 눈을 마주보며 해준이 그래의 셔츠 위로 얼굴을 부볐다. 그 뜨거움에 그래는 숨을 색색 뱉으며 후들거리는 다리를 버텨내기 위해 무게를 조금 더 해준에게 실었다. 이내 주저 없이 천천히 그래가 걸친 옷의 단추를 하나씩 풀어내는 손길에 그래의 맨살이 어두운 방안에 드러나자 해준의 허벅지 위로 그래의 몸이 따라 무너져 내렸다.

 

 



몽롱하게 감겨진 그래의 눈꺼풀을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쓰다듬으며 해준이 그래의 얼굴을 바라봤다. 침대 위에서 한참이나 제 무게에 휩쓸리며 단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느라 잔뜩 붉어진 눈꼬리가 미안하면서도 어여뻤다. 땀에 젖은 맨 피부가 스치는 것이 자꾸 심장을 쿵쿵 대게 했다. 그 쿵쿵댐이 가까이 맞댄 서로의 맨 가슴팍에서 느껴졌다. 뼈대가 굵지만 저보다 마른 그래의 어깨를 다시 제 품으로 끌어안으며 해준은 제 팔 위로 그래의 고개를 고쳐 눕혔다. 땀에 젖어 넘어간 머리카락에 드러난 이마 위로 입을 맞추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달콤하고 간지러운 입맞춤에 부은 눈을 한 채 배시시 웃는 그래의 뺨을 쓰다듬는 것은 해준의 몫이었다.

 

 

 


떨어져 있는 일주일 동안 내내 생각했습니다.”

………

 

그날 내가 느꼈던 아쉬움이 뭔지.”

………

 

자꾸 욕심만 많아지는 내가 싫어질 정도로…

…해준씨…

 

이제는 잠시라도 당신과 떨어지기 싫은 거야.”

………

 


 

 

맨살의 허벅지가 잔뜩 비벼지자 떨림도 배가 되어갔다. 그날 밤 함께 있었던 시간이 자꾸만 떨어져 있던 일주일 내내 생각이 나 그리움에 얼마나 목이 메었는지 몰랐다. 가겠다는 몸을 붙잡고 몇 번이고 껴안았어야 했는데, 같은 침대 위에 누워 아까운 밤을 함께 보냈어야 했는데 하는 후회 섞인 생각들을 반복하며 돌아가 제 연인을 가득 껴안을 날만을 기다렸었던 해준에게 지금 제 옆에 숨기는 것 없이 풀어진 그래는 사랑 그 자체였다.

 

 

 


너무 보고 싶었습니다.”

…저도요.”

 

그리고 돌아오면 꼭 이 말을 한 침대에 누워서 해주고 싶었어.”

…무슨 말을요…?”

 

 

 


잘 자요.

저를 물끄러미 올려다보는 그래의 까만 눈동자에 담긴 제 얼굴을 보다 해준은 그래의 뺨을 다정하게 쓸어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제 말에 품으로 파고드는 그래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해준은 다시 그래의 동그란 정수리 위로 입술을 문질렀다. 어쩌면 시작은 우연이었지만 그 우연을 위해 전부터 몰래 품어온 마음은 달라진 관계서부터 거칠 것 없이 부풀어 가고 있었다. 이제는 밤을 넘어 아침까지 함께하고 싶은 제 욕심이 무서울 정도였지만 자신은 여전히 이 4살 어린 연인의 앞에서만큼은 저도 모르게 속수무책이 되는 것을 알기에 얼굴에 걸리는 것은 행복 어린 웃음뿐이었다.

 

 



 

 

해준그래 합작 꿀Night f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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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eyword: 잘 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