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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준그래] 삼시세끼 下 세 끼 -fin. (W.빙다리 핫바지) bgm. 40(포티)-듣는 편지 해준은 책상에 팔을 괸 채 제 너른 손바닥으로 이마를 감싸 쥐며 앓는 소리를 목안으로 삼켰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져 있는 연필은 꾹 눌러쓴 힘에 심이 부러져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고 원고지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아, 내가 대체 무슨 짓을. 자괴감에 한껏 빠져있어도 머릿속엔 터질 만큼 많은, 지워지지 않을 기억들이 있었다. 아이의 도톰한 입술을 어둠 속이라는 핑계를 대고 수십 번 훔치고 혀로 옭아맸었다. 여리디 여린 숨결을 목 안으로 삼키고 제 목을 동아줄마냥 끌어안은 부드러운 팔을 손바닥 가득 쓰다듬다, 들어가서는 안될 어린 손가락 사이사이로 제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아저씨. 미성숙한 목소리로 저를 부를 때마다 벅찬 마음을 담아 과일처럼 붉게 여물고 있는 뺨에 입술.. 더보기
[해준그래] 지키지 못한 약속 (w. 꽃단지) 밤이 깊었다. 걸인들이 모여 사는 다리 아래도, 해준이 있는 궁궐의 돌담 안도 모두 어둠의 차지였다. 해준은 늘 곁을 지키던 호위 무사 대신 그래를 대동한 채 궁을 거닐었다. 감히 궁궐 안에서 임금에게 칼을 빼어드는 무모한 이가 있을 리 없었지만, 전쟁을 앞둔 만큼 혹여나 해준을 해하려는 자가 있을까 싶은 마음에 그래는 연신 주변을 살폈다. 그렇게 두 사람이 걷기 시작한지 얼마나 지났을까, 해준은 연못 앞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연못 가까이 마련된 정자에 걸터앉았다. 그래는 두어 발자국 떨어진 곳에서 사방을 경계하며 검집을 꼭 쥐고 섰다. 해준이 그래를 바라보았다. 그래는 고개를 숙였다. “그래야.” “예, 전하.” 그래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하자 해준은 말없이 가까이 오라 손짓했다. 떨어져 서있던 그래가 .. 더보기
[해준그래] 마지막의 마지막 (W. 난나) 어느덧 10개 주제로 달려온 해준그래 합작의 마지막이 찾아왔네요.그동안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번 주제는 '마지막' 입니다. [해준그래] 마지막의 마지막 “해준씨, 우리 헤어질까요?” 해준의 집에서 DVD를 보던 날이었다. 해준과 그래의 영화 취향은 맞는 듯 묘하게 비껴갔다. 보통은 그래가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결제해서 보거나 해준의 DVD 컬렉션에 있는 영화를 아무거나 골라 틀었다. 둘 다 영화를 제대로 본다기보다는 화면을 멍하게 응시했다. 가끔은 그래가 영화에 집중해 해준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고 바싹 궁둥이를 붙어 앉아 입을 벌리고 화면을 바라보기도 했다. 해준은 그런 그래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영화가 재미없으면 재미없는 대로 그래는 해준의 어깨에 기대어 잠이 들었다. 그날도 그저 그런 평범한 .. 더보기
[해준그래] 삼시세끼 中 두 끼 (W.빙다리 핫바지) bgm. 브라운 아이즈- 루아흐(Ruach) 그래는 티가 나지 않게 고민스러운 얼굴로 뭔가를 휘휘 젓는 해준의 손을 바라봤다. 고소한 향이 해준의 손을 따라 흘러와 그래의 코끝까지 닿아오자 이내 굳어있던 그래의 표정이 흐물거리다 파득 다시 고민스러워졌다. 몸에 좋지도 않은 게 향기는 왜 이렇게 좋을까. 입 밖으로 꺼내지 않은 걱정스러운 말들이 그래의 도톰한 입술 안에서 몽글몽글 뭉쳐지다 한숨이 되어 흘러나왔다. 갈색 빛의 뽀얀 것을 내려다보던 해준의 눈이 그 한숨 소리를 따라 커피 향처럼 흘러 그래에게 닿았다. “그거… 몸에 되게 안 좋대요.”“알아.”“밥 먹고 마시면 살도 찐다는데…”“그것도 알아.”“입냄새도… 날 수 있어요…!”“………”“그러니까… 믹스커피 말고 다른 건 어때요…?” 그래의 말에 해준.. 더보기
[해준그래] 香 (W. 난나) ♬ Sarah Chang - Chaconne합작 아홉번째 주제, '커피' 입니다. [해준그래] 香 (향) 조선 호텔, 아니 조센 호테루는 최초의 서양식 호텔은 아니지만 조선총독부와 경성 역에 중간에 위치해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조센 호테루는 그 당시 최고의 호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커다란 식당은 사람들로 붐볐고, 프랑스식 식사는 서양인들마저 감탄할 정도였다. 사교실은 당대 내로라하는 인사들이 만나 관계를 쌓는 곳이었는데, 종종 이곳에서 사회 지도층의 자제들이 맞선을 보기도 했다. 그것은 그래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원래는 그래의 쌍둥이 누이가 이 자리에 나왔음이 옳았다. 그러나 그녀는 진실로 사랑하는 남자와 사랑의 도피를 떠나버렸다. 당장 마음이 급했던 부모는 사람을 풀어 그래의 누이를 찾.. 더보기
[해준그래] Your Name (w.꽃단지) 강해준. 오른쪽 소매를 들추면 보이는 세 글자는 철강팀 대리님의 이름과 똑같았다. 회사 사람들에게 이 네임을 보이지 않기 위해 봄, 가을, 겨울에는 소매 아래로 손목을 감춰야 했고 여름에는 두꺼운 손목시계를 차야 했다. 왜 왼손이 아닌 오른손에 시계를 차냐는 질문을 받을 때면 적당히 대꾸할 말이 없어 웃어 넘겨야 했다. 부모님의 말씀에 의하면 나는 태어날 때부터 손목에 이 이름을 지니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몸에 누군가의 이름을 새기고 살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엄마, 아빠라는 호칭이 입에 익고 아는 단어가 많아져 제법 긴 문장을 말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다. 엄마도 아빠도 글자가 없는데 왜 나만 손목에 이런 게 있냐는 질문에 엄마가 뭐라고 대답했더라. 네임. 엄마는 손목 안쪽에 가지런히 놓인 이.. 더보기
[해준그래] Breakfast (W. 꽃단지) 눈을 뜨자 품에 안긴 그래가 보였다. 위잉- 돌아가는 선풍기 날개가 천진한 소리를 냈다. 그 위로 매미 우는 소리를 한 꺼풀 덮었다. 더운 날씨였다. 선풍기 방향이 조금이라도 틀어졌다가는 금방 피부 위로 땀이 새어나올 듯한 그런 날씨였다. 내일은 좀 더 더워질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조금이나마 덜 절망적일 수 있는 것은 에어컨이 있기 때문이다. 회사, 버스, 지하철, 어디를 가더라도 에어컨을 틀지 않은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어제 저녁부터 밤새 에어컨을 틀지 않은 데에는 오랜만에 자고 가기로 한 그래의 고집이 한 몫 했다. "전기를 아껴야 한다니까요." 작년의 전력난을 근거로 들어 하는 말이 전기 아끼기에 동참해야 한단다. 내가 거기에 조금이라도 토를 달면, 마치 회사에서 새로운 사업에 대해 프레젠테이션 하.. 더보기
[해준그래] 삼시세끼 上 첫 끼 (W.빙다리 핫바지) 해준은 앞머리 속에 살짝 감춰진 눈썹을 들어올렸다. 그의 신경이 꽤 날카로워졌다는 의미였다. 그를 잘 아는 해준의 친구는 한참 어색한 너털웃음을 지어 보이다 해준의 앞에 아주 뜻밖의 것을 주욱 밀고는 ‘한 달만 잘 부탁해’라는 말만을 남기고 아슬아슬한 분위기를 풍기는 공간을 빠져나갔다. 그 공간 안에 남은 해준은 뻣뻣한 고개를 내려 자신의 집 현관을 차지하고 서있는 것을 내려다보았다. “…안녕하세요, 장그래입니다. 한달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깡마른 체구에 단정하게 걸린 교복과 초초한 듯 올려다보는 눈은 어리디 어린 아이의 눈이었다. 해준은 지끈거리는 이마를 손바닥으로 누르며 앓는 소리를 내었다. 팔자에도 없는 동거의 시작이었다. 삼시세끼강해준X장그래 w. 빙다리 핫바지 해준은 혼자 있는 것을 선호했.. 더보기
[해준그래] 러브 미슐랭 (W. 난나) 이번 주제는 입니다.음식 평론가 강해준x막내 셰프 장그래 AU 입니다. 제목은 하늘령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해준그래] 러브 미슐랭 (Love Michelin) 음식 평론가 강해준의 레스토랑 비평이 연재된다는 소식을 들을 사람들은 술렁였다. 음식 평론가 강해준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음식 평론가가 없다는 의견이 팽배한 와중에 해준은 혜성같이 등장한 음식 평론가였다. 외국에서 유학을 마친 해준은 각종 재료에 대한 지식도 해박했고 연구를 하며 논문도 몇 차례 발표했다. 그는 외국에서 먼저 음식 평론가 활동을 시작해 인지도를 쌓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메이저 신문사에 음식 재료에 대한 칼럼을 투고하기 시작했고 그 코너는 인기를 끌어 책으로 출간된 후에 베스트셀러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그래도 그 책을.. 더보기
[해준그래] 혼자는 무서워 (W. 꽃단지)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는 것이 무서웠던 때가 있다. 어린 시절을 되짚어보면 누구나 그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여섯 살, 내가 살던 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한참이나 올라가야 하는 아파트 십이 층에 있었다. 일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들어서서 버튼을 누르면 곧 닫혀버리는 키 큰 철문. 오른쪽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아슬아슬하게 눈높이에 걸치는 높이로 마주보고 붙은 거울 두 개. 거기다 몇 초 이내에 꺼진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희미한 불빛이 더해진 엘리베이터는 어린 아이가 불안함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는 일이 무섭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다. 남자 아이라면 그런 시시한 것에 겁을 먹어서는 된다는 생각 탓이다. 고작 여섯 살 먹은 아이에게,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