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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해준그래] 혼자는 무서워 (W. 꽃단지)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는 것이 무서웠던 때가 있다. 어린 시절을 되짚어보면 누구나 그런 기억이 있을 것이다. 여섯 살, 내가 살던 집은 엘리베이터를 타고서 한참이나 올라가야 하는 아파트 십이 층에 있었다. 일 평 남짓한 좁은 공간에 들어서서 버튼을 누르면 곧 닫혀버리는 키 큰 철문. 오른쪽 왼쪽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 아슬아슬하게 눈높이에 걸치는 높이로 마주보고 붙은 거울 두 개. 거기다 몇 초 이내에 꺼진대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희미한 불빛이 더해진 엘리베이터는 어린 아이가 불안함을 느끼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엘리베이터를 혼자 타는 일이 무섭다는 말은 아무에게도 하지 못했다. 남자 아이라면 그런 시시한 것에 겁을 먹어서는 된다는 생각 탓이다. 고작 여섯 살 먹은 아이에게, 남자는 이래야 한다는 고정관념이란 꽤나 큰 영향을 주는 것이었다.

 

 어느 주말, 평소처럼 몇몇 친구와 동네 놀이터 구석에 모여 놀았다. 애들이란 찬바람이 거세게 부는데도 집안에 가만히 있지를 못 한다며 엄마의 타박을 들었지만 밖에 나가 놀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아이들과 무슨 얘기를 하게 될지 알았다면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았을 텐데.

 친구들은 며칠 사이 쌀쌀해진 공기에 목도리까지 꼼꼼하게 두르고 나타나서는, 안 그래도 엘리베이터 타기를 무서워했던 나에게 무서운 이야기들을 풀어놓았다.

 

-그거 알아? 엘리베이터에는 귀신이 있대.

-, 거울 속에서 우리를 보고 있대.

-아니야. 우리 형이, 귀신은 맨날 위에서 내려다본다고 했어.

 

 열아홉 살 고등학생인 지금 누가 내게 장그래, 엘리베이터에는 귀신이 있대하고 말한다면 그래? 귀신은 내 옷장 속에만 사는 줄 알았는데.’ 하고 웃어넘길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섯 살의 나에게, 그렇게 하기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었다. 친구들 앞에서는 애써 무섭지 않은 척 굴었지만 나도 알아. 엘리베이터, 귀신.- 집으로 돌아가 엘리베이터 앞에 서니 자꾸만 조금 전 귀신 이야기가 떠올랐다. 버튼을 누르고 커다란 문이 열리면 안에서 귀신이 튀어나올 것만 같아서 쉬이 누르지 못했다.

 

 네모진 버튼 언저리에 몇 번이고 손을 가져갔다가 멀리했다. 반질반질 닳은 자국이 있는 버튼은 왠지 매일 누르던 버튼이 아닌 것만 같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위한 버튼이 아니라 큰 호랑이라도 불러내는 버튼인 것 마냥 건드리기 어려웠다. 다른 사람과 함께 탄다면 덜 무서우련만, 그날따라 왜 엘리베이터를 타려는 사람이 없는 건지. 마음속에서는 슬금슬금 대상 없는 원망마저 생기려고 들었다. 버튼을 누를까 말까 한참이나 망설인 끝에 발소리가 들렸다.

 

-그래야.

-.

 

 옆에 와서 선 건 옆집에 사는 강해준 형이었다. 형이 살짝 웃어보이고는 내 손을 잡아왔다. 형은 내 손을 잡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 내가 한참동안이나 누르지 못 했던 버튼을 눌렀다. 뾰족한 끝을 위로 하고 있는 세모꼴 버튼에 주황색 불이 들어왔다.

 형이 하는 모양을 가만히 보고 있다가 잡힌 손으로 시선을 옮겼다. 네 살 차이. 어릴 때일수록 나이 차이는 두드러지는 법이었다. 아직 초등학교에 입학도 하지 못한 나와 달리 벌써 초등학교 삼학년이었던 형은 내 눈에 언제나 어른스러웠고 늘 나보다 두 뼘 정도 컸다. 우리는 빨갛고 네모진 숫자가 변하는 걸 지켜봤다.

, , , , , . 숫자가 점점 작아지고 엘리베이터가 가까워졌지만 이제는 문이 열리는 게 무섭지 않았다.

 

-가자.

 

 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잡은 내 손을 가볍게 당겼다. 해준이형이 십이 층 버튼을 눌렀다.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리는 엘리베이터가 오기를 기다릴 때처럼, 말없이 빨간 숫자가 변하는 것만 올려다봤다. 이제는 정말로 무섭지 않았다.

 

 

 

 

 

그래야.”

 

 교문 앞에 서서 한참 어린 시절 일을 떠올리다가, 어깨를 가볍게 톡 치는 손길에 뒤를 돌아봤다. 이제는 대학생인 해준이형이 있었다. 형이 씩 웃어보였다.

 

.”

오래 기다렸어?”

 

 아니. 얼른 고개를 저으니 형이 어깨를 감싸왔다. 잠시 생각하다가 어깨에 둘러진 팔을 풀고 손을 잡았다. 그러자 형이 손을 빼려고 들었다. 왜 그러는지 모르는 것도 아닌데 괜히 서운한 마음이 들어서 더욱 힘주어 잡았다.

 

손 차가울 텐데.

그냥 잡고 싶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