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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해준그래] 러브 미슐랭 (W. 난나)

이번 주제는 <식사를 합시다> 입니다.

음식 평론가 강해준x막내 셰프 장그래 AU 입니다. 제목은 하늘령님께서 도움 주셨습니다.


 [해준그래] 러브 미슐랭 (Love Michelin)

  음식 평론가 강해준의 레스토랑 비평이 연재된다는 소식을 들을 사람들은 술렁였다. 음식 평론가 강해준이라면 우리나라에서는 제대로 된 음식 평론가가 없다는 의견이 팽배한 와중에 해준은 혜성같이 등장한 음식 평론가였다. 외국에서 유학을 마친 해준은 각종 재료에 대한 지식도 해박했고 연구를 하며 논문도 몇 차례 발표했다. 그는 외국에서 먼저 음식 평론가 활동을 시작해 인지도를 쌓았다. 한국에 돌아와서는 메이저 신문사에 음식 재료에 대한 칼럼을 투고하기 시작했고 그 코너는 인기를 끌어 책으로 출간된 후에 베스트셀러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그래도 그 책을 한 권 가지고 있다.― 이후에는 케이블 프로그램에 출연해 수려한 외모까지 뽐냈다. 그러더니 돌연 여행을 갔다 와 세계의 레스토랑에 대한 책을 내더니 이제는 웹상에 레스토랑 비평이 연재된다는 소식이 들려온 것이다. 그 첫 타자가 바로 이상식당이었다.

  정통 파인 다이닝과 가정식의 오묘한 조화

<이상식당>이라는 상호명을 보면 <심야식당> 패러디인가 싶을 수도 있겠다. 역에서는 멀지 않지만 찾아가기 쉬운 위치는 아니고, 외관을 봐도 평범한 가정식 식당처럼 보인다. 인테리어 또한 세련되었다기 보다는 투박한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이 레스토랑의 오너 셰프는 원 컨티넨탈 호텔 레스토랑에서 20년간 경력을 쌓은, 녹록치 않은 ‘선수’다. 오상식 오너 셰프는 우리가 이제껏 파인 다이닝에서 아쉬웠던 것들을 충족시켜준다. (……) 작지만 알차게 운영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레스토랑이었다. 무협에서 숨은 고수를 찾는 기분이 이런 걸까. 그와 일하는 셰프들의 태도가 누구보다 진지해 보이는 건 어쩌면 당연하다. 연남동에 있는 이 작은 레스토랑의 귀추가 주목된다.

글 강해준 / 일러스트 장백기

  사람들은 해준의 레스토랑 비평을 읽고 매우 놀라워했다. 기본적으로 해준은 무례하지 않되 신랄하게 비평하는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 그가 쓴 글치고는 유했다. 물론 해준 특유의 시니컬한 비평이 섞였지만 다른 글들에 비해서는 유하다는 소리였다. 게다가 이제껏 그가 비평한 레스토랑 중 가장 작은 규모의 레스토랑이었다는 점에서도 이상식당은 주목받았다. 사람들은 이상식당에 몰려들기 시작했고, 예약이 차곡차곡 쌓였다. 덕분에 매상은 착실히 올랐고 주방은 원래도 소규모로 운영되어 바빴지만, 울리는 전화에 더욱 바빠졌다. 말 그대로 정신없는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해준의 비평이 서서히 잊히고, 손님들을 상대하는 데만도 바쁘던 나날 중에 예약자 리스트에 익숙한 이름이 보였다. 그래는 예약자 리스트를 정리하다가 깜짝 놀랐다. 해준의 이름이 있었다. 그것도 오늘이었다. 입 안이 바짝바짝 마르는 듯했다. 상식의 호통에 그래는 부랴부랴 달려가 섰다. 마저 코스를 준비하느라 정신이 없는 와중에도 해준이 문득문득 생각났다. 마침내 예약한 시간이 되고 해준이 가볍게 인사하며 들어왔다. 해준이 특별히 그래를 지목해 코스 요리에 대해 설명해달라는 부탁을 했기 때문에 그래는 뻣뻣하게 굳어 해준의 앞에 섰다. 평론가의 변덕인가 싶기도 했다.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도 인지하지 못한 채 외운 걸 줄줄 뱉어냈다.

  “지금 나오는 샐러드는 장미 드레싱을 곁들인 바닷가재 샐러드입니다. 스프는 마늘 겔을 곁들인 해, 해초와 전복 스프입니다.”

  “그래씨 너무 겁먹지 말아요.”

  해준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 식사가 끝난 뒤 그래의 손에는 해준의 명함이 들려있었다. 퇴근을 하고 잠시 이야기를 하자는 해준의 말에 그래는 멍하게 명함을 바라보았다. 퇴근 시간, 목도리를 매던 동식이 농담을 던졌다.

  “야, 강해준 걔가 너 좋아해서 그렇게 좋게 써주는 거 아닐까?”

  “네?”

  “아냐, 걔가 그럴 애는 아니긴 하지.”

  해준과 원래 친구사이인 동식이 금세 말을 정정했다. 그래는 그 말 한 마디에 명함을 꼭 쥐었다가 손에 힘을 풀었다가 다시 꼭 쥐었다가를 반복했다. 마음 같아서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고 싶었다. 최근에는 비평 글에 그래의 이야기도 쓴 적이 있는 해준이었다. 그래는 한숨을 푹 쉬었다. 가게 문을 닫고 나오자 해준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가 고개를 꾸벅 숙였다. 평소 해준의 글 옆에 실려 있던 냉한 표정의 사진과 다르게 해준은 부드러운 표정이었다. 그래는 자신이 봤던 비평에 있던 사람과 다른 사람인가 싶었다.

  “저기, 평론 글 말인데요…….”

  “그래씨에 대한 호감 때문에 좋게 써준 거 아니냐고요?” “어, 네…….”

  그래는 혹시 자신의 생각이 해준에게 들리는지 의심을 할 정도였다. 겨우 평정을 되찾고 대답을 하자 해준이 낮게 웃었다. 그래는 그 목소리가 좋다는 생각을 하는 제가 이상했다.

  “아니에요.” 

  “아, 죄송합……”

  “호감 있는 건 맞는데, 그것 때문에 좋게 써준 건 아니라고요. 저 그런 사람 아니거든요. 동식이한테 들어서 알죠?”

  “네, 그, 그럼요.”

  “그래서 말인데 그래씨, 언제 오프예요?”

  “수요일, 이요…….”

  “그럼 그 때 저한테 시간 좀 내줄래요?”

  얼떨결에 그래는 그러마, 했지만 막상 당일이 다가오자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덕분에 주방에서도 실수가 잦았다. 상식이 정신을 어디에 두고 다니냐고 윽박질렀고 그래는 고개를 90도로 숙이며 죄송하다고 연신 사과했다. 해준이 싫은 건 아니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유명하고 잘 나가는 평론가가 자신 같은 별 볼일 없는 새끼 셰프에게 관심을 가지는지 알 수 없었다. 목에 두른 빨간 목도리가 답답해졌다. 목도리를 잡아당기며 살짝 풀었다. 저 너머에서 해준이 흰색 목폴라 니트 티와 타탄체크 코트를 입고 나타났다. 사실 평론가가 아니라 모델이 아니었을까. 그래는 목도리에 얼굴을 숨기고 싶어졌다.

  “원 컨티넨탈 호텔 레스토랑 예약해놨어요.”

  “네? 거긴 너무…….”

  “원래 썸을 타고 싶으면 좋은 음식을 대접하고 그러지 않아요?”

  “네?”

  그래의 눈이 동그래졌다. 해준은 그래의 목도리를 내려 그래의 얼굴이 드러나도록 했다. 그래는 해준의 시선에 얼굴이 화륵 달아오를 것만 같았다.

  “저 지금 공개적으로 구애하는 거예요.”

  “왜 저를…….”

  “사람이 사람한테 반하는데 이유가 있나요? 우리 식사합시다. 단둘이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