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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작

[해준그래] 그날 밤 술자리에서 (W. 꽃단지)

술자리

 

강해준 X 장그래

by. 꽃단지

 

 

 

그래야, 일어나.”

 

 그래를 깨우려 침실로 들어갔다. 이십 분 전까지 내가 차지했던 침대 한 쪽을 보고 누워있다. 이불에 얼굴을 파묻고 있으니 이불 위로 나온 팔과 까만 머리통만 보일 뿐이다. 잠시 꼼지락대나 싶던 작은 몸이 일어날 생각은 않고, 조금 움직여 제 옆의 이불을 들춘다.

 

그래야?”

 

 이름을 불러도 아랑곳 하지 않고 들추어 낸 자리를 툭툭 쳤다. 제 옆에 도로 누우라는 뜻일 터였다. 하는 수 없이 그래 옆자리를 차지하고 누웠다. 덮고 있는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껴안으니 품에 얼굴을 묻는다.

 

,

 

그래야 일어나야지. 출근 안 할 거야?”

 

 아직 눈도 못 뜬 주제에 입술에 떨어진 입맞춤이 그저 좋다는 듯 배시시 웃는다. 그래야 일어나, ? 귓가에 작게 속닥이자 간지러운 듯 어깨가 움츠러든다. 코를 잔뜩 찡그리면서도 입에는 웃음을 베어 물었다. 여전히 눈은 감은 채였다.

 

 

 

 그래와 함께 산 지 한 달이 다 되도록 그래는 일찍 일어날 줄을 몰랐다. 내가 일찍 깨운다 싶으니 깨워도 더 자려고 들고, 매일 아침 제가 아슬아슬하게 맞춰 둔 알람이 울리고 나서야 눈을 뜨는 것이다. 회사에서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은 것이 다행이라 하겠다. 처음 같이 살기 시작할 때 아침은 내가, 저녁은 그래가 준비하기로 약속했었다. 저녁을 회사에서 먹는 일이 많은 탓에, 그래는 내가 할 일이 더 많을 것이라며 미안해했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아침잠이 많은 그래에게 아침을 챙기도록 하지 않아서 다행이다 싶은 것이다.

 

 겨우 깨워 욕실에 들어갔다 나오게 하고 마주 앉아 밥을 몇 숟가락 뜨니 출근 시간이 다가오고야 말았다. 그 사이 그래는 잠이 가신 멀쩡한 얼굴이 되어서, 넥타이를 매주는 내내 재잘거렸다.

 

그래야, 나도 넥타이.”

강해준 어린이, 넥타이 혼자 맬 줄 몰라요?”

 

 그래가 가볍게 푸흐흐 웃었다. 뒤돌아서서 그래에게 등을 보이고 서서 넥타이를 넘겨주었다. 넥타이를 직접 만진 게 원인터에 입사할 때 처음이었다던 그래는 이제 제법 익숙해져서 서툴지만 스스로 맬 수 있게 되었다. 그렇지만 남에게 해주는 자세에 익숙하지는 않은 탓에, 그래가 편하게 매려면 내 등 뒤에 서는 수밖에 없다. 무릎을 굽혀 몸을 낮춰주자 내 목에 넥타이를 걸고는 어깨 너머로 팔을 뻗어 매듭 짓기 시작했다.

 

그래야, 강해준 어린이보다 못 매는 것 같은데?”

잘 할 수 있어요.”

 

 아직 미숙한 탓에 자꾸 미끄러지는 손길. 그래가 당황했을까 일부러 장난을 걸었다. 키득키득 웃으며 그래가 등을 팡팡 쳤다. 느린 손을 가져서는 잘 할 수 있단다. 그래가 뒤에서 넥타이를 매주면 꼭 그래에게 안긴 것 같은 자세가 되는데, 그게 좋아서 아무리 시간이 없어도 매일 아침 넥타이는 그래 손에 맡기는 것이다. 그래가 넥타이를 다 매준 뒤 뿌듯하게 웃었다. 그런 그래의 팔을 당겨 껴안았다. 그래는 잘 다린 옷이 구겨진다며 버둥거렸다. 그러면 더 구겨지는 걸 모를 리 없을 텐데. 이러다 정말 늦겠다 싶어서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

 

 

 

 

 

 

 오랜만의 동기 모임. 영업3팀 김동식이 사무실 이쪽저쪽 뛰어다니며 동기들을 불러 모아 만든 자리였다. 그 노력이 무색하게 성대리는 여자를 만나러 간다며 일찍 일어나 이미 자리에 없었다. 신혼인 황대리도 아내로부터 퇴근 했다는 문자를 받자마자 당연하다는 듯 집으로 가버렸다. 그러니 호프집 테이블에 남은 것은 나와 김동식, 하성준 뿐이었다.

 

그래서 내가

, 강해준 넌 여자 안 만나냐?”

 

 김동식이 실패한 소개팅 얘기를 여섯 번째 꺼내자 하성준이 말을 돌렸다. 여자를 만나? 갑작스러운 질문에 멀뚱멀뚱 쳐다보자 재차 묻는다. 아니, 연애 안하냐고.

 

애인 있어.”

?”

연애한다고.”

 

 뭐라고? 동기 녀석들이 놀란 얼굴을 했다. 그래와 처음 사귀기 시작할 때, 서로에게 장그래씨강대리님이던 그 때에 약속한 게 있었다. 남들에게 거짓으로 숨기지 않기. 서로에 대해 떳떳해지자는 생각에 했던 약속이다.

 

이런 배신자.”

예뻐?”

사귄지 얼마나 됐는데.”

예뻐? ? 예뻐?”

너 일하는 거 이해해 줄 여자가 있냐?”

 

예쁘냐는 질문은 전부 하성준의 것이었다. 그 물음 사이로 김동식이 이것저것 물었다.

 

사귄지는 두 달 좀 안됐네. 그 사람도 직장인이니까 내 일도 이해해 주지.”

궁금하네, 소개 좀 시켜주지.”

아 왜, 안 돼.”

얼굴 좀 보자.”

안된다니까.”

불러봐아아-”

 

계속 거절하다가 김동식의 몹쓸 애교에 결국 핸드폰을 들고 일어섰다.

 

기다려봐.”

 

 동기 녀석들의 기대에 찬 눈빛을 뒤로 한 채 밖으로 나와서 전화를 걸었다. 신호가 간 지 얼마 안 되어 통화 연결음이 끊어졌다. 그리고 언제 들어도 예쁜 그래의 목소리가 들렸다.

 

해준씨?”

그래야 지금 통화할 수 있어? 늦는다더니 야근중인 거 아니야?”

일 끝났어요. 무슨 일이에요? 술 많이 마셨어요?”

아니 술은 많이 안 마셨어. 그게 아니라, 하성준 알지?”

알죠, 안영이씨 팀 하대리님.”

 

 맞아, 그랬지. 하성준의 부사수가 그래의 동기였다. 요즘은 좀 덜 괴롭히는 것 같던데.

 

하성준이 연애 안하냐고 물어보더라.”

그래서 뭐라고 했어요?”

애인 있다고 했지.”

 

 아하하하- 그래가 웃었다. 부서지는 숨소리가 아까 낮의 햇살만큼이나 밝았다. 대리님들이 뭐라고 하세요?

 

애인 얼굴 좀 보여 달라네?”

거기로 갈까요?”

집이야?”

아니요, 회사예요.”

 

 동기들에게 그래를 소개할 수 있다는 사실에 가슴이 뛰었다.

 

그럼 올래? 지금 김대리랑 하대리랑 나랑 셋이 있어. 호프집인데 김대리가 전에 여기서 영업 3팀 회식했었다고 하더라.”

, 어딘지 알겠어요. 금방 갈게요.”

 

 통화를 마치고 식당 안으로 다시 들어갔다. 김동식과 하성준이 나를 열심히 쳐다본다. 덩치 큰 또래 남자 둘로부터 받는 초롱초롱한 눈빛이라니, 사양이다.

 

온대?”

 

 고개를 끄덕이자 녀석들의 표정이 활짝 폈다. 내 연애가 그렇게 의외인가. 많이 궁금했던 모양이다. 그 얼굴들을 보고 있다가 따라서 픽 웃었다. 마지못해 소개시켜주는 것처럼 굴었어도, 그래를 동기들에게 소개시켜 주는 건 아무래도 기대되는 일이었다.

 

 

 잠시 후 도착한 그래를 가장 먼저 발견한 것은 나도 김동식도 아닌 하성준이었다.

 

장그래?”

 

 하성준의 말을 듣고 돌아보자 가게 입구에서 두리번거리는 그래가 보였다. 술기운에 정신을 못 차리던 김동식은 장그래라는 말에 퍼뜩 고개를 들었다.

 

우리애가 왔다고? 어디?”

그래야, 여기.”

 

 손을 흔드니 눈을 맞추며 웃어보이고는 테이블 사이로 걸어온다. 왼쪽 손에 들린 까만 비닐봉지가 흔들리며 부스럭대는 소리를 냈다.

 

왔어?”

, 해준씨.”

, 인사 해. 이쪽은 내 애인 장그래. 다들 알지? 그래야, 내 동기들.”

안녕하십니까. 장그래입니다.”

어어, 그래.”

장그래.”

 

 둘은 얼떨떨한 얼굴로 인사를 받았다. 많이 놀랄 줄 알았던 동기들은 생각보다 멀쩡한 얼굴이다. 물론 놀라기는 했지만 자신들과 친한 입사 동기의 연애 상대가 매일 얼굴 맞대는 같은 회사 직원, 그것도 남자라는 사실에 보인 반응 치고는 심심하다. 특히나 김동식은 아끼는 부사수가 제 동기와 사귄다는데 크게 당황한 표정이 아니다.

 

별로 안 놀라네?”

네가 연애한다는 것 자체가 낯설어서 만나는 사람이 장그래라는 건 놀랍지도 않다.”

 

 하성준이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리고는 피식 웃더니 내 왼쪽에 앉아있던 몸을 일으켜 내 맞은편, 그러니까 김동식 옆으로 자리를 옮겼다. 장그래, 여기 앉아.

 

감사합니다.”

 

 그래가 웃어보이고는 내 옆자리에 와서 섰다. 그러더니 바로 앉지 않고 선 채로, 손에 들린 검은 봉지에서 병 세 개를 꺼냈다. 숙취 해소 음료다. 대리님들 이거 받으세요.

 

이야, 장그래. 이런 건 언제 준비했어.”

짱그래, 제법인데?”

 

 많이 마시지 않았다고 했지만 그래도 술자리라고 근처 편의점에서 사왔단다. 숙취 해소 음료를 챙겨온 센스가 기특했던지 두 동기의 얼굴이 환하게 폈다벗어서 의자에 걸쳐 둔 내 자켓 주머니에도 하나 넣어주더니 눈을 맞추고 웃는다. 그 얼굴이 마치 칭찬을 조르는 강아지 같아 따라 웃으며 어깨를 토닥였다. 그러자 그래 입가의 미소가 더 크게 번진다.

 

앉아, 앉아.”

.”

 

동식의 말에 그래가 웃으며 대답하고 자리에 앉았다. 앉기 무섭게 하성준이 짓궂은 말을 건넸다.

 

장그래, 강해준한테 뭐라도 좀 먹여주고 그래봐.”

 

 그래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던 거라면 하성준이 잘못 짚은 거다. 두 달 동안 연애하면서 서로 먹여주던 게 몇 번이던가. 처음 그래에게 먹여주던 날 그래는 부끄러운 듯 얼굴을 붉혔지만 이제는 제법 애교도 부리면서 먼저 먹여주곤 한다. 며칠 전 그래가, 제가 먹던 라떼를 마셔보라고 입가에 대어 주던 것을 생각 하면서 그래 쪽을 보는데 표정이 심상치 않다.

 

?”

 

 당황한 얼굴로 우리 셋을 번갈아 보고 있다. 그리고는 하성준에게 되묻는다. 아무래도 다른 사람들 앞에서의 애정 표현이 쉽지 않은 듯 보였다. 왜 거기까지 생각하지 못했을까.

 

그래야.”

 

 이름을 부르자 이리저리 눈을 굴리던 그래가 얼른 내 쪽을 쳐다봤다. 작은 방울토마토 하나를 포크로 찍어 내밀었다.

 

-.”

 

 웃으며 말하자 그래가 다시 당황한 얼굴을 했다. 이건 좀 덜 부끄러워할 줄 알았는데 아닌가. 그래가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레 입을 벌렸다. 그러면서도 하대리와 김대리 눈치를 보는 건 잊지 않는다. 작게 열린 입 가까이 포크를 가져가는데 썩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장그래?”

 

그래가 겨우 벌린 입을 꼭 다물고 오른쪽으로, 그러니까 내 뒤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 한석율씨.”

 

 방해한 목소리의 주인을 찾으려 목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거기에는 그래가 이름을 부른 한석율씨를 비롯해서 내 직속 후배인 장백기씨와 그들의 동기 안영이씨가 있었다.

 

장그래, 급한 일 생겼다는 게 여기였어?”

 

 

 

 

 

 제일 싫어할 줄 알았던 하성준의 제안으로 야 안영이, 네 동기들이랑 여기 와서 앉아- 그래의 세 사람과 합석하게 되었다. 그들에게 들은 얘기는 이랬다. 오늘 아침부터 한석율씨가 15층 여기저기 그래와 장백기씨, 안영이씨를 따라다니며 술 한 잔 하자고 그렇게 졸랐다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 저녁 퇴근 후로 약속을 잡았고, 먼저 일을 끝낸 세 사람이 잔업이 남은 장백기씨를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데 기다리던 그래가 전화를 받더니 급한 일이 있다며 가버렸다고.

 

 그래도 다행히 그래의 동기 세 사람은 별로 기분 나쁜 표정이 아니었다. 게다가 연애 사실을 밝혔을 때도 장백기씨를 제외한 두 사람은 그다지 놀라지 않았는데, 안영이씨와 한석율씨 말로는 그래가 요새 워낙 헤실헤실 웃고 다니기에 연애하나보다 생각했단다.

 

 우리와 그래 동기들 간에 화제 거리가 슬슬 떨어져 갈 때 쯤, 그래가 오기 전부터 급하게 술잔을 비운다 싶었던 김동식이 테이블에 쓰러졌다. 그렇게 오늘의 술자리는 자연스레 끝이 났다. 계산을 마친 뒤 그래의 손을 잡고 가게를 나왔다.

 

그래야.”

.”

 

 가만히 이름을 불렀다. 시선은 앞을, 정면을, 저 앞의 신호등 근처 어딘가를 향한 채였다. 그래 역시 앞을 보던 그대로 대답했다. 차분한 말투였지만 작은 웃음 한 조각을 얹으니 아침에 투정 부리던 목소리 그대로였다.

 

약속 있는데 온 거야?”

기대하던 일이니까요. 해준씨 친한 동기들한테 애인으로 소개받는 것.”

그래도 동기들이랑 약속이 있었으면 선약이 있으니까 다음에 만나자고 말을…….”

 

 앞만 보고 걷던 그래가 멈춰 섰다. 그리고는 몸을 틀어 내 두 뺨을 감쌌다. 내 말이 마음에 안 들었는지 제법 야무지게 다문 입이 예쁘다. 그래의 입술 끝에 장난기가 잔뜩 담겼다. 금세 훅 가까워진 얼굴이 빙글빙글 웃었다. , 뭐 하려는지 알 것도 같은데.

 

, 입술은 잠깐의 입맞춤만큼이나 짧은 소리를 남기고 떨어졌다.

 

예쁜 입술로 미운 소리만 할 거예요?”

 

 여전히 가까운 얼굴로 그래가 포실포실 웃었다. 눈가를 매만지다 눈동자로 떨어지는 시선이 간지러웠다. 내 것과 맞물린 눈길을 가만히 받아내다 따라 웃었다. 입술 사이로 섞이는 웃음소리며 숨결이 사랑스러웠다.